기타겨울 동해 & 강릉 혼자 여행 사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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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연말을 앞두고 휴가가 많이 남아있는데 가족들 시간이 나질 않아서, 어떻게 저를 위해 보람있게 쓸 수 있을 지 고민하다가 여행을 추진하게 됐는데요. 다녀온 느낌과 겪었던 일들을 잊고 싶지 않아서 여기에라도 글 남겨 봅니다. 제가 딱히 social media를 하는게 없거든요. 제일 많이 활동하는 곳이 그나마 클리앙입니다. 혼자 다녀온 내용이니 같은 입장이신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혼자 다니는 여행이기 때문에, 자차 출근하는 와이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그리고 제가 아이들 저녁밥을 챙겨야 하는 월요일과 금요일을 피해서 화~목 일정을 이용하기로, 그리고 그다지 바쁘지 않은 다소 게으른 듯한 힐링 여행으로 컨셉을 잡고 목적지를 여기저기 알아봅니다. 또한 가족들과 평소에 잘 안갈 것 같은 곳을 가보기로 합니다. 와이프와 아이들이 자차 편도 1.5시간 이상 여행을 지루하다고 꺼려합니다. 저는 놀러가는 곳은 멀더라도 낯선 곳을 선호하거든요.

처음에는 여기에 어느 분이 올려 주신 민둥산 관련 글을 보고 충동적으로 정선(고한, 사북)을 알아봅니다. 무궁화호를 이용해서 현지에서는 버스를 이용, 민둥산 트래킹을 다니고 고한 동네 산책, 근처에 있는 하이원 리조트를 다녀올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차, 스키철이라 숙소가 아예 없거나 숙박비가 너무 높게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하루 4~5만원을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여인숙(지금도 여인숙이 있다니!)은 현장에서 구해야 되겠더군요.

그래서 포기하고 다른 곳을 찾아봅니다. 2~3주 전부터 많이 추워졌잖아요? 도보 여행을 고려해서 그다지 춥지 않은 곳을 찾다 보니 동해, 강릉이 찾아졌습니다. 동쪽 바다는 2~3년 안에는 가족들과는 안 가볼 것 같습니다. 기온도 내륙보다 4~5도 정도 높은 편입니다. 숙소도 예산 범위에 속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곳을 검색하여 아래와 같이 루트를 짜봤습니다.

[1일차: 12/27(화)]
서울역(KTX) -> 동해역(버스) -> 추암해변(버스) -> 감추해변(숙박)

[2일차: 12/28(수)]
한섬해변(도보) -> 묵호항,등대,논골담길,스카이밸리,해랑전망대,묵호역(열차) -> 정동진역(도보) -> 정동진해변(숙박)

[3일차: 12/29(목)]
정동진해변(도보) -> 정동진역(열차) -> 강릉역(버스) -> 경포호수(도보) -> 경포해변(버스) -> 강릉중앙시장(도보) -> 월화거리(버스) -> 시외버스터미널

길 걷다 출출할 때 먹을 시리얼바와, 날이 일찍 어두워지는 것을 감안해서 숙소에서 밤시간 동안 즐길 게임들과 영화들을 랩탑에 세팅해 둡니다.

[1일차: 12/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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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일어나 식구들과 아침을 먹고 서울역으로 이동합니다. 동해역으로 가는 KTX는 이미 만원입니다. 옆자리에 클리앙과 다스뵈이다, 뉴스공장을 보시는 남자분이 앉으셨네요. 말 걸어보고 싶었지만 서로 부끄러울 것 같아 참아내고, 대신 차창에 흘러가는 풍경들을 보니 혼자 여행 온 것이 실감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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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0 쯤 동해역에 도착하니 많은 분들이 택시 앞에 줄을 섭니다. 저는 천천히 버스를 타고 둘러볼거라, 버스를 기다립니다. 30분에 1대씩 오는 것 같은데 하도 안와서 보니 3~4분 전에 지나갔군요. (…) 아직 배가 덜 고파서 추암해변에 도착하여 끼니를 때우기로 합니다. 버스를 타고 보니 하차지 안내 방송이 없어 목적지인 대구동을 한참 지나 (…) 강원대학교까지 가서야 늦었음을 깨닫고 내립니다. 다시 역방향 버스를 20분 가량 (…) 기다려 대구동에서 내리니 또 추암해변까지는 1시간 정도 걸어야 합니다. 이 버스는 하차 안내 방송이 나와 다행입니다. 추암해변에 도착하니 15:50분 (…) 2시간을 버스+도보에 날렸습니다. 택시 타고 시간을 아낄 걸 하고 후회합니다. 직장인은 돈으로 시간을 사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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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원한 바다와 높은 파도를 보니 위안이 되었습니다. 겨울바다를 혼자 오게 되다니 감격이었습니다. 배가 많이 고파 먹을 곳을 둘러보니 대부분 식당에서는 2인분부터 주문을 받는 관계로 편의점 김밥을 먹습니다. 여기 편의점은 2층에 식사 전용 홀이 있어서, 유리창을 통해 해변을 마주보면서 먹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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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식사 후, 촛대바위와 흔들다리를 보고 오리들을 구경하고 나니 오후 5시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때쯤 천곡동굴을 볼 생각이었는데, 다음날 보거나 안보기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추암해변에서 시내로 나가는 버스는 오후 6시에 출발하기 때문에 1시간 정도 이사부사자공원도 보고 해변도 걸으면서 시간을 보낸 후 버스로 한섬해변 근처 시내로 이동했습니다. 여기서 닭강정 조금과 편의점 도시락 등등 사서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숙소 컨디션이 좋아서 가족들과 오고 싶었습니다. 숙소에서 씻고 TV 보며 혼자 먹는 닭강정은 와이프한테 미안할 정도로 정말 맛있었습니다 ㅎㅎ

[2일차: 12/2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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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프론트에서 집어온 천곡동굴 브로셔를 보고 나중에 아이들과 올 일이 있을 때 보기로 합니다. 근처 감추해변을 건너뛰고 한섬해변부터 묵호항까지 해파랑길 33코스를 따라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해파랑길 33코스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몽돌해변, 천곡항, 고불개해변, 낚시꾼들, 철로변길, 민가 사이로 난 오솔길들, 높고 힘차게 부서지는 파도와 희미하게 느껴지는 바다 냄새.. 도보로 충분히 이동 가능한 거리라 더욱 매력이 있었습니다. 묵호항에 다다르며 보이는 건어물 가게들과 수산시장.. 유튜브에 보면 묵호에 숙소 잡고 수산시장에서 회 떠드시는 분들이 조금 부러웠는데, 저는 정동진에서 묵을 예정이라 아쉽지만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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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골담길은 많이 가꿔져 이제는 인공미가 크지만 그래도 정겹고 예쁜 곳이었습니다. 사진 찍을 곳도 많고, 달동네 구조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올라가면 묵호와 바다를 넓은 view로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바닷바람이 좀 있었지만 날씨가 좋아서 날짜 운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루트는 논골1길로 올라가서 묵호등대를 보고 논골3길로 내려오는 걸로 잡았습니다. 묵호 등대 안에 들어가면 중간 부분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여기서 보는 view도 좋아서 굳이 (비싸지는 않지만) 요금을 부담하며 스카이밸리를 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논골담길을 다녀와 해랑전망대까지 이동하며 수많은 식당들을 지나쳤는데,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2인분 이상만 손님을 받는 것 같더라구요. 해랑전망대는 무료이지만 가볼만 합니다. 동해 바다는 보는 위치에 따라 각각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바다를 보며 내년엔 가족들과 어떤 마음으로 재미있게 지낼 지 고민하다가 묵호역까지 도보 이동했습니다. 묵호역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정동진역까지 이동(누리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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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역에 내려 바로 보이는 해변으로 나가봅니다. 역시 정동진은 정동진입니다. 여기서는 와이프랑 같이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와이프는 추운데 무슨 바다냐며 안왔을거예요. (…) 여튼 다음날 일출을 기약하며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택시기사님들이 자꾸 빵빵거리며 정동진 볼 것 없으니 강릉시내 가자고 자꾸 꼬셔서 성가셨습니다.

[3일차: 12/2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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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일어나 멋진 정동진 해돋이를 보며 새해 소원을 빌었습니다. 태어나서 산이든 바다든 해돋이를 직관한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진사님들과 사람들이 나와서 구경하는 장면도 장관이었습니다. 영상통화로 생중계하는 분도 계시고.. 저도 멋진 장면을 제 눈과 사진, 영상에 담아 강릉역으로 이동(누리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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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역에서는 경포해변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느끼며 바다 & 사구로 이뤄진 호수를 도는 것은 즐거웠습니다. 감상을 나눌 누군가가 같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오히려 신경써야 할 사람이 없어서 좋았던 것도 있었습니다. 중간에 경포대에 들러 6·25에 희생한 강릉 출신 호국영웅 분들께 묵념할 기회도 가졌습니다. 호수공원은 관리가 잘 되어있고, 코스가 (속초 영랑호 대비)지나치게 길지 않아서 연인과 산책하기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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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거의 한 바퀴를 돌고 경포해변으로 이동했습니다. 역시 유명 여름 휴양지라 횟집들과 모텔들이 즐비합니다. 해변을 따라 넓은 바다모래 위를 걸으며 예전 그 분과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올라, 이름도 불러보고 그랬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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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버스를 타고 강릉 중앙시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예전에 싸게 사둔 맥날 상품권으로 점심을 때우고, 시장과 월화거리를 구경하며 식구들에게 줄 선물을 골랐습니다. 부각모듬이랑 ㅅㅇㄷ인절미, 애들 줄 쥐포 샀네요. 오징어 순대를 사가고 싶었지만 버스타고 가는 몇 시간+내일 드실 걸 생각하면 배탈이라도 날까봐 신경 쓰였어요. 커피콩빵을 많이 팔던데, 지난 달에 다녀오신 분께 얻어먹어서 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집에 돌아왔는데, 와이프님이 부각을 뜯자마자 반봉을 순삭하시더군요. (…) 떡도 인기가 많구요.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할까요. 여지껏 여행자를 위해 설계된 장거리 산책로는 제주도의 “올레길” 만 알고 있었는데, “해파랑길” 이라는 좋은 길을 또 알게되어 운이 좋았습니다. 동해안을 따라 있는 엄청나게 긴 길이더라구요. 이번엔 주로 해파랑길 33번 코스를 다녔지만 내년에도 이런 혼자 여행할 기회를 맞게 된다면 다른 코스를 따라 동해안을 새롭게 느껴볼까 해요.

최근 뉴스에서 버스터미널 들이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문닫고 있는 곳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무조건 지자체에서 살리는 건 어렵겠지만, 그래도 시외버스를 이용해 일상생활을 하시는 분들이나 저 같이 여행에 유용하게 쓰시는 분들께는 아쉬운 일이네요.

이상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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